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주전함 야마토 (문단 편집) == 제작 비화 == 프로듀서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이미 이 작품 이전부터 많은 작품을 말아먹은 상태라 배수진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작의 기획을 짜기 시작해[* 일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기획을 짜는 데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지구 탈출([[므두셀라의 아이들]]로 개명)'에서의 전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의욕적으로 능력 있는 스텝들을 잔뜩 모아놓고[* 당시 A 프로덕션에서 일하던 [[오오츠카 야스오]]에게 제작 참여를 권유하기도 했지만 전쟁 병기를 미화할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당한 적도 있었다.] 엄청난 회의와 협의를 거쳐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 중 기획 안을 정할 때 [[후지카와 케이스케]]와 토요타 아리츠네의 방안이 서로 충돌하기도 했는데, 후지카와 케이스케가 제안한 제목은 '우주전함 코스모'였고, 토요타 아리츠네가 제안한 제목은 '아스테로이드 6'였다.[* 토요타 아리츠네는 [[서유기]]를 바탕으로 먼 행성에 인류를 구원하는 [[방사능]] 제거 장치를 가지러 가는 스토리를 구상했고, [[적]]의 정체는 [[컴퓨터]]로 생각해두었으며 주역 우주전함으론 [[소행성]] 자체의 엔진을 장착한 형태의 암석우주선 이카루스를 기획하여, 승무원들을 세계 각국에서 모집하는 설정으로 짜두었다고 한다.] 여기서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토요타 아리츠네의 방안을 채택해 제목을 '아스테로이드쉽 야마토'로 바꾸었고 전함의 디자인은 [[스튜디오 누에]]의 마츠자키 켄이치가 맡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이미지가 바뀌어 지금의 야마토로 결정지어졌다. 이후 추가 검토가 여러 번 이어진 끝에 적은 이성인으로, 야마토가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를 정화하기 위해 방사능 제거 장치를 구하러 이스칸다르를 목표로 항해하는 지금의 설정이 확립된다. 이 시점에 현재의 워프 항법이나 파동포 등의 여러 특수 효과들도 고안되었고, 1973년 늦여름 '우주전함 야마토'로 이름을 정한 기획서가 완성되었다. 이듬해 4월엔 마츠모토 레이지가 제작진의 추천으로 초대를 받아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고, 당초 감독을 맡을 예정이던 야마모토 에이이치가 얼마 후 하차함으로써 마츠모토 레이지와 이시구로 노보루가 감독으로 배치되었다. 같은해 8월엔 파일럿 필름이 제작되었으며, 방영 시간대는 [[닛폰 테레비]] 계열의 일요일 저녁 7시로 정해졌다. 원래는 [[무시 프로덕션]]에서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무시 프로덕션의 파산으로 변경되었으며, 일본 위키피디아에선 방영 결정 후 방송 화수가 52화에서 39화로 1쿨 가량 단축되었단 정보가 나와 있다. [[토미노 요시유키]]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4화 콘티 작성을 맡기도 했는데, 콘티의 내용이 니시자키가 구상했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달라 결국엔 콘티를 새로 고쳤으며, 그 이후론 니시자키에게 1번도 의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니시자키가 원래 [[무시 프로덕션]] 출신이라 주요 스태프진 중에선 구 무시 프로덕션 출신 애니메이터들이 제법 존재했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완성된 작품은 당시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층인 아동이 보기엔 너무 하드하고 복잡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애들은 외면하게 되고 그에 따라 [[시청률]]은 바닥을 치게 된다.[* 동시간대에 방영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애니메이션|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아동용으로 매우 적절하기도 했다.] 거기다 당시 인기였던 거대로봇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함대전 위주의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완구 판매도 망하고... 결국 50화 넘게 예정되어 있던 방송 스케쥴은 26화로 줄어들었고, 제작진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복선을 포기하고 작품을 압축해 26화로 조기 종영시킨다. 후반이 엄청나게 급전개인 것은 이 때문으로 시청률 조사는 비디오 리서치에서 평균 6.0%, 닐슨 조사에서 평균 7.3%에 그쳤다.[* 일본 위키피디아에선 1975년 중반부터 지역마다 속속 재방송이 이루어져 청소년과 성인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각지에서 팬클럽들이 결성되었다고 나와 있다. 전성기에는 800개 이상의 클럽이 존재했으며 회원수가 15만 명에 달했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였다고.] 거기다가 야마토가 부활한다는 설정이 발목을 잡아 해외 수출까지 망하여 완전히 사면초가에 몰리게 된다. 이후 니시자키는 업계에서 거의 매장이 될 정도로 비참한 상황에 몰렸다고 한다. 그래도 작품 자체는 꽤 본격적으로 만든 SF라서 상도 여럿 받았고 알게 모르게 청소년, 성인 위주로 팬이 꽤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잠재된 수요라서 작품 흥행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작품이 영 아니게 되자 니시자키는 77년 최후의 선택으로 TV판에서 [[옴니버스|1회성]] 에피소드를 빼고 가미라스 함대와 야마토의 전면 승부만을 뽑아서 편집한 [[총집편|재편집]] 극장판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해보기로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